1. 내가 생각하는 문화의 정의
    나의 삶에서 문화는 떼려야 뗄 수 없었다. 내가 자란 터전인 통영의 영향이 컸다고 생각한다. 중학교 때 박경리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학급 친구들과 함께 박경리기념관을 찾았다. 고등학교 때 그림을 그려 전혁림미술관에 전시를 할 수 있었고, 군대 가기 전에 윤이상국제음악당에서 서포터스로 활동하며 스위스 바젤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옆에서 들을 수 있었다. 큰 영광이었고 나에게 문화는 문학과 미술 음악 등의 카테고리화된 정의로써 머리로 배우기 이전에 가슴과 마음으로 경험했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축적된 문화이지만 '문화체험'을 하는데 있어 문화에 대한 이해가 먼저 필요하다. 왜냐하면 문화는 삶에 대한 인간들의 지식과 태도를 소통하고 지속시키고 발전시키는 상징적 형식으로 표현되어 전달된 개념의 체계1이기 때문이다. 개인만의 향유가 아니라 서로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문화는 사상, 의상, 언어, 종교, 의례, 법이나 도덕 등의 규범, 가치관과 같은 것들을 포괄하는 "사회 전반의 생활양식"2이라 할 수 있다. 이 두가지 정의를 통해 문화는 '사회 전반의 생활양식'을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즉, 개인에게서만 그치는 행위는 문화라고 설명하기 어렵다. 
    이를 통해 문화는 개인의 생활 행위에서 비롯되고 그 행위는 집단적으로 발전될 수 있어야 하며, 소통하여 하나의 양식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내가 생각한 문화의 근원적 정의는 “생활의 평균화된 양식”이다. 모든 행위는 생활에 근거하고 있고 평균적으로 이루어져 소통할 수 있어야 하며, 하나의 장르로 불릴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사회 전반의 평균을 잘 살펴볼 수 있는 곳, 생활과 가장 밀접하고 소통이 이루어지며 시간의 축적을 통해 하나의 양식으로 보여주는 곳이 시장이라고 생각했다. 문화=시장이라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서 우리의 문화를 잘 살펴볼 수 있다는 뜻이다. 지역마다 나라마다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는 시장은 하나의 “그 지역사회 전반의 생활양식”을 담고 있는 곳이며, 나는 이번 기회에 서울 도심 최대의 전문 재래시장인 '남대문시장'을 방문했다. 

2. 수요와 공급사이에서 엿볼 수 있는 문화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많은 시장 중 남대문시장을 문화체험공간으로 선정하여 방문했다. 이곳으로 선정한 까닭은 사회 전반의 평균적인 생활양식으로 발전 하여 문화로 통용되기 위해 ‘시간’은 무시할 수 없는 요소 중 하나인데, 남대문시장은 그 역사가 가장 깊은 곳이기 때문이다. 이곳은 조선 태종 14년인 1414년 조정이 감독하는 시전 형태로 출발했다. 광복 이후 남대문시장 상인연합회가 꾸려졌으며 1964년 건물주와 상인들이 공동 출자한 주식회사의 형태로 이어져 600년이 넘는 역사성을 지니고 있다. 과거의 흔적은 많이 사라졌지만 위치적 특징과 “없는 것 빼고 다 있다”라는 말이 나올 만큼 다양한 물건을 취급하고 있다. 
    다양한 물건을 취급한다는 것은 다양한 수요가 있다는 뜻이다. 개개인이 원하는 물건을 다종다양하게 찾을 수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개인 맞춤형은 찾아보기 힘들다. 물품들은 어느 정도 평균점이 있다. 애석하게도 손님과 달리 상인들은 돈이 되는 것을 팔아야 하기 때문이다. 팔리지 않는 것들은 없어지기 마련이고 잘 팔리는 것은 시장에서 살아남는다. 그러한 작용이 모여서 시장 물품이 형성되고 시장 전체의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백종원의 식당이 꾸준한 손님을 유지할 수 있는 까닭은 개개인의 다른 맛을 어느 정도 평균화한 맛으로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내가 방문했을 때도 어느 정도 평균화된 상품을 점포마다 살펴볼 수 있는데, 마치 사회와 약속한 것처럼 비슷한 품목이 많다. 품목이 제품과 음식일 뿐이지만 상인과 손님 그리고 수요와 공급이라는 줄다리기 속에서 형성된 평균점은 우리의 양식으로 발전했다. 문화도 다르지 않다. 어느 정도 평균점에서 통용 가능해야 한다. 그 통용 속에서 개성이라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3. 만들어진 마트와 축적된 시장 
    그렇다면 시장과 비슷하게 생각되는 마트도 문화를 담고 있는가? 누군가에게는 마트 또한 문화를 담고 있는 장소일 수 있다. 편리하고 효율적이라는 차이점이 존재할 뿐이지 물품과 사고파는 행위는 같아서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남대문시장을 통해 살펴본 모습에서 문화의 정의와 확연한 차이가 있다. 마트는 만들어 진 곳이고 시장은 축적되어 형성된 곳이다. 아래에서 위로 발전하듯 개인의 행위가 모여 집단적으로 발생해야 하는데, 마트는 소수의 기업을 통해 천편일률적으로 만들어졌다. 
    즉, 마트는 사고 파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만 시장에는 그 이상이 있다. 기능적인 효율보다 점포마다의 색깔을 느낄 수 있고 상인과의 관계가 두드러진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관계가 없는 곳에서는 문화로 발전하기 어렵다. 마트에 따로 ‘문화센터’가 있다는 것을 보면, 최소한 매장에서 살펴볼 수 있는 문화는 보기 어렵다는 반증이다. 이 비교를 통해 문화는 소수 집단의 일 방향적인 방법으로 만들어질 수 없다. 문화는 쌍방향적인 상호작용으로 축적되는 것이다.  

4. 시장은 우리의 민족문화을 대변한다 
    시장은 지역의 수요와 공급 법칙에 철저히 반응한다. 지역민의 의 식 주 또는 기호에 따라 그들의 수요에 대응하여 물품을 구비하는 시장 본연의 기능 때문이다. 따라서 시장의 모습은 지역에 따라 천차만별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불규칙성 속에서도 묘하게 겹쳐 보이는 문화가 존재한다. 바로 민족성이다. 나는 건축학도로서 시장이 가진 민족성을 공간적으로 파악해 보려 했다. 시장은 민족성을 대변하고 이는 공간으로 번역되어 나에게 다가온다. 하지만 나는 번역에 대한 언어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묘하게 닮아있다” 라는 표현을 쓸 수 밖에 없다. 대한민국 시장의 민족성, 다시 말해 시장의 문화는 어떠한 언어로 정의 할 수 있을까? 
    위의 의문을 품고 남대문시장에 방문했다. 다사다난했던 대한민국의 근 현대사 속에 아득바득 견디어 냈던 서민들의 시장이라면 그 때의 시대적 배경에 대응하는 공간적 특징이 누적되었을 것이라 예상했다. 위의 사진을 보면 ‘카파르 차르쉬-그랜드 바자르(Kapali Carsi-Grand Bazar)’라는 이스탄불의 대표격인 시장인데, 파는 물품부터 차이가 있다. 형형색색의 다양한 조명부터 차이가 있다. 더 주목할만한 부분은 지붕으로 덮여있는 실내공간인데, 우리의 시장은 외부공간으로 오픈되어있다. 골목에 형성되어 있다는 느낌을 주는 우리 시장과 달리 이 곳은 점포중심으로 배열되어 있다. 이처럼 같은 시장이라 하더라도 각 지역의 특징과 시대적배경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남대문시장은 번영했던 오스만제국의 시장의 화려함보다 먹고 살기 바빴던 우리만의 고유한 모습을 살펴볼 수 있었다. 

5. 나의 문화에 대한 정의는 계속 바뀔 것이다 
    건축에서 익숙한 단어 중의 하나가 '문화'다. 작년 건축설계수업에서 '복합문화시설'을 짓기 위해 갤러리와 음악당 그리고 카페와 상점을 넣었다. 문화공간이라는 곳이 프로그램만 넣으면 해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넣어 표현했다. 그리고 나는 A+ 성적을 받을 수 있었다. 포트폴리오를 수정하기 위해 작년작품을 보게 되었는데, 껍데기만 ‘복합문화시설’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이번 기회로 남대문시장을 방문하면서, 레포트를 작성하면서 그 느낌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체감했다. 
    나는 보통 문화를 생각했을 때, 음악과 공연, 미술등의 프로그램을 떠올렸다. 내가 익히 알고 있는 것들이였고 나의 머릿속으로도 그렇게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50년 가까이 바꾸기 어려운 건축물을 짓는데, 너무 단순하게 생각했다.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도 부족했고 어디서 출발했는지 고민조차 해보지 않았다. 최소한 내가 생각하는 문화에 대한 정의를 내려볼 생각은 했어야 했다. 
    문화에 대해 내가 경험했던 것, 관련 자료를 찾아보았던 것, 시장답사를 통해 정의를 “생활의 평균화된 양식”으로 내렸다. 이는 내가 과거에 프로그램으로만 적용하려고 했던 어리석음을 깨닫게 되는 세 단어이다. 문화가 프로그램으로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을 통해 살펴보았던 것처럼 생활에 근본을 두고 있고 서로의 상호작용을 통해 소통하며, 그 과정 중에서 평균점을 맞추며 양식으로 발전한다. 그리고 이러한 양식이 프로그램이 되는 것이였다. 내가 기존에 알고 있던 문화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문화를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과정이 지속된다면 나의 문화에 대한 정의는 계속 바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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